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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차기 지도자로 사실상 확정된 시진핑.

  
시진핑.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최고 지도자다. 2011년은 중국 국민당이 청나라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라면, 2021년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같은 역사적인 시기, 중국을 이끌고 나갈 그를 직접 본 것은 2007년 3월초. 우리의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린 인민대회당에서였다.

당시 그는 상하이 시당서기였다. 전임자인 천량위 서기가 부정부패 혐의로 낙마하면서 구원 투수로 상하이에 전격 투입됐을 때다. 
중국 당국은 이례적으로 각 직할시와 성 대표단의 분임 토의 현황을 외신기자들에게 공개했다. 투명성을 높이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연스럽게 차기 지도자를 언론에 선보인 것이다. 
불과 몇 앞에서 상하이시 대표단 회의를 주재하는 그를 보니 산처럼 묵직한 모습이었다. 목소리는 덩치답게 남저음 목청이었다.

물론 중앙 요직으로 가는 지름길인 상하이 시당서기로 전격 기용된 것에 대한 주위의 기대와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는 면도 있었지만 남들의 말을 주로 경청하는 스타일이었다. 2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둘러싼 가운데 무슨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겠냐마는, 시진핑 당시 서기는 대표들에게 일일이 발언권을 주고 마지막에 자신이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분임 토의를 마쳤다. 

그는 주역이었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조역을 자임하려 했다.
 
때마침 건너편 방에는 시진핑 서기와 대권 경쟁을 벌이던 리커창 당시 랴오닝성 당서기(현재 상무 부총리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서열 7위)가 랴오닝성 전인대 대표단의 분임 토론을 주재하고 있었다. 

시진핑과 리커창. 그들이 동시 출연하는 데 기자들의 몸과 마음만 바빴다. 
리커창 당시 서기는 분임 토론을 자신이 주재했다. 일일이 대표들의 발언권을 지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분임 토론 중에 외신기자들의 질문까지 서슴없이 받았다. 
말도 빨라 듬직한 목소리의 시진핑 서기와 확연히 구별됐다. 어떻게 보면 자신감이 넘치는 행동이었지만 자칫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날카로운 질문이라도 나와 쩔쩔맨다면 무슨 망신인가. (물론 언변과 내공이 뛰어난 중국 지도자들이 그런 경우를 당하는 적을 본 적은 없다)
 
다행히 필리핀 출신의 미국 CNN 특파원이 대학 재학 시절(리커창 서기는 북경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평범한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분위기가 얼어붙는 일은 없었다. 


 
시진핑 서기가 곰처럼 묵직하면서도 영리한 스타일이라면, 리커창 서기는 여우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는 스타일이었다. 
대조를 이룰 만큼 두 사람의 성장 배경도 다르다. 공통점은 문화혁명 때 시골에 내려가(중국말로는 하방이라고 한다) 고생을 한 지식청년이다. 나이도 시 부주석이 53년생, 57세라면 리 부총리는 55년생, 55세다. 비슷한 연령대다.

다른 점은 시진핑 부주석이 청화대 화공과를 나와 법학박사를 받았다면, 리커창 부총리는 북경대 경제과를 나와 경제학 박사다. 

가장 큰 차이점은 시진핑 주석은 아버지(쉬중신)가 부총리, 전인대 부위원장을 지내 중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태자당(공산당 간부 자제) 출신이다. 
반면 리커창 부총리는 안후이성 시골에서 태어나 자수성가로 오늘날 지위에 올랐다. 그의 출세 배경은 공산당의 전위 조직인 공청단이었다. 후진타오 주석의 뒤를 이어 공청단 중앙 제1서기를 지내 '리틀 후진타오'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당 원로를 비롯한 당안팎의 두터운 지지를 얻은 시진핑 부주석을 끝내 뒤집지 못했다.     
 
2012년 가을, 시진핑 부주석이 출신 성분과 성장 환경이 매우 다른 리커창 부총리와 당 서열 1위(중국 공산당 총서기·국가주석·중앙군사위 부주석)과 당 서열 3위(국무원 총리)을 각각 맡아 서로가 조화를 이룬다면 중국의 앞날은 밝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호흡이 맞지 않는다면 중국으로서는 재앙이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Posted by 홍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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