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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표적인 외교관이던 우젠민(吳建民) 전 외교학원 원장이 6월18일 새벽 4시 교통사고로 숨졌다. 향년 77세. 우젠진 전 외교원장은 프랑스 대사를 지낸 바 있다.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었다. 

그는 최근들어 인민해방군의 이른바 강경파인 뤄위안(羅援) 소장, 그리고 강력한 중국을 부르짖고 있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일간지 환구시보 후시진胡錫進 총편집(편집국장)과 중국 외교 방향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의 평화 발전을 주장하는 온건파 원로 외교관이다. 


우젠민 전 대사는 이날 후베이성 우한에서 우한대학 차를 타고 가다 후베이성 우한 둥후터널 입구에서 자동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바람에 변을 당했다. 함께 동승했던 우한대학 정보대학 주샤오츠 교수도 함께 숨졌다. 

우젠민 전 원장은 1939년 충칭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베이징대학 물리학과를 진학할 생각이었다. 수학 물리 화학에 관심이 많았다. 고3때 진학상담할 때 담임 선생님이 베이징외대 외국어과를 응시하라고 권유해 이를 따랐다. 그는 그는 다시 태어나도 외교를 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외교에 대한 많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부인(施燕華)도 외교부 번역실에서 덩샤오핑의 통역을 맡은 외교관 부부이다. 



그는 1959년 베이징 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외교부에 들어갔다. 이후 마오쩌둥 전 주석, 저우언라이 전 총리를 위해 프랑스어 통역을 맡았다. 1971년 중국이 유엔 회원국 지위를 회복한 이후 중국 유엔 주재 대표부에서 가서 1978년까지 3등 비서관, 2등 비서관으로 일했다. 1991년부터 94년까지 중국 외교부 신문사 사장(외교부 공보관)겸 대변인을 지낸 바 있다. 이후 네덜란드 대사, 유엔 제네바 대표부 대사를 지냈고 1996년에는 부부장(차관)급으로 승진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프랑스 대사를 지낸 뒤 외교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2003년 7월부터 2009년까지 외교관 양성기관인 4년제 대학인 외교학원 원장을 지내면서 국정자문기관인 전국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부주임을 지냈다.

그는 최근들어 중국 외교 방향에 대해 강경파 인사들과 자주 토론을 벌였다. 그는 특히 2016년 3월과 4월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과 이른바 우후(吳胡)논쟁을 벌였다. 후시진 총편집은 인민일보 유고 특파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전 종군기자, 걸프전 이라크전 종군 기자를 지낸 현역 언론인이다. 이른바 우후논쟁의 발단은 우젠민 전 원장이 지난 3월 강연에서 환구시보 보도내용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면서 불이 붙었다. 


우젠민 전원장은 강경한 논조를 펴고 있는 환구시보를 겨냥해 오늘날 세계적인 주제는 평화와 발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전쟁과 혁명에 대한 관성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바탕 전쟁을 꿈꾸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젠민 전 원장이 지적한 것은 환구시보 총편집 개인을 비난한 것이라기 보다는 현재 중국이 걷고 있는 외교노선이 위험하다는 고민의 산물이었다. 중국이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100년 동안은 조용히 지내라는 덩샤오핑의 유훈을 무시하고 국제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실에 제동을 걸고 싶어했다고 볼 수 있다.  



후시진 총편집은 자신의 블로그에 우젠민 선생의 관점은 외교관들의 낡은 사유방식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외교를 이해하고 외교를 주도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면서 이런 것이 또다른 의미에서 민족주의 화근이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원로 외교관과 현역 언론인의 치열한 논쟁은 중국 외교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일반인, 특히 지식인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우젠민 전 원장은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출범 직후 중국의 대표적인 외교노선이었던 화평발전을 화평굴기로 바꾸려하자 아직 때가 이르다, 화평발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한 바 있다. 


지금 중국이 미국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고 일본과 댜오위다오(일본 이름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외교 노선을 줄곧 부르짖던 원로 외교관의; 갑작스런 죽음에 중국 사회가 슬픔에 빠졌다. 



Posted by 홍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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