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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중국 최대 정치적 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시짱자치구 티베트 대표단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얼굴이 담긴 이른바 시진핑 배지를 달고 나타났다.
국가 지도자 배지가 등장한 것은 중국에서 마오쩌둥 주석에 이어 처음이다. 전인대 티베트 대표단은 시진핑 주석 덕분에 많은 사람이 실질적인 이득을 봤다. 그래서 배지를 달아 존경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전인대 기간 리커창 총리의 정부공작보고 연설중에도 예전과 달리 박수를 치지도 않고 근엄한 모습을 보였다.

  

 

 

 

시진핑 주석 집권 4년차를 맞아 중국 공산당이 집단지도체제에서 1인 체제로 넘어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6년 들어 지방정부 지도자들이 시진핑 총서기를 영도핵심으로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톈진시 황싱궈 대리 서기는 시진핑 총서기, 이 핵심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천취안궈 티베트 자치구 서기는 당의 핵심, 시진핑 총서기에 대한 충성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2016년 1월말 열린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는 영도핵심인 시진핑 주석에 절대 충성하고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자고 다짐했다.

그러면 핵심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심이라는 뜻이며 동시에 임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임기가 없다는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제3세대 지도부는 장쩌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중앙 집단지도체제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제4세대 지도부는 후진타오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중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핵심이라는 표현이 빠진 것이다. 그렇다면 후진타오 주석은 왜 핵심으로 부르지 않았는가. 장쩌민 전 주석이 중앙군사위 주석을 2년 동안 건네주지도 않았고, 건네준 다음에도 주요 인사 문제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군부에 대한 통제나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만큼 권력이 취약했다는 뜻이다.

 

반면 시진핑 주석은 집권 3년만에 군부를 완전 장악했다. 후진타오 주석 당시 군 실세를 반부패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숙청하는 데 성공했다. 군대개혁을 통해 해방군 30만명을 줄이고 7대 군구를 없애고 육군을 창설하면서 5대 전구로 바꾸었다.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전환한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1인 체체로 전환한다는 조짐을 보이면서 시진핑 주석이 마오쩌둥의 길을 걷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16년 2월25일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는 마오쩌둥이 1949년 공산당 7기2중전회에서 발언한 당위원회 공작방법을 학습하자는 통지문을 각급 당위원회에 하달했다. 공작방법은 당위원회는 서기가 반장(리더)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뒷담화를 해서는 안된다. 의견이 다른 동지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 단결해서 일을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시진핑 주석을 핵심으로 단결하자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16년 2월19일, 당 기관지 인민일보, 관영 신화통신, 국영방송인 CCTV를 방문한 행보도 의미심장하다. 시 주석은 언론은 당과 한 가족이어야 한다, 당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CCTV 젊은 여기자는 시진핑 주석과 악수를 한 다음 그날 내내 손을 씻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오쩌둥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시진핑이 마오쩌둥 발언을 자주 언급하고 그의 행동을 따라하는 듯한 스타일을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마오쩌둥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이용해 권력기반의 안정을 얻고,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필요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오쩌둥 길로 갈 것으로 속단하기는 어렵다. 문화혁명과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광둥성 선전의 덩샤오핑 동상이었다. 결국 시진핑 주석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한손에 잡고, 다른 한손에는 마오쩌둥의 권위를 쥐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면서 마오와 덩을 합친 제3의 지도자가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Posted by 홍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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