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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국민당은 10월17일 임시 전당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였던 훙슈주(洪秀柱) 입법원 부원장(국회 부의장)을 주리룬(朱立倫) 당주석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대만 총통 선거는 내년 1월16일. 불과 대선을 석달 앞두고 후보 교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이런 결정은 훙슈주 후보로는 더이상 민진당 대선 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 주석과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이다. 주리룬 국민당 주석은 1미터 82센티미터 훤칠한 키에 유머가 풍부한 게 장점이다. 웃기도 좋아하고 입가에는 보조개가 있다.

 

 

 

 

 

 그의 가정배경은 독특하다. 아버지는 중국 대륙(저장성 이우 출신)에서 장제스 총통을 따라 대만으로 건너온 국민당 공병 중대장 출신이다.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타오위안에서 건설 작업을 하다가 타오위안 토박이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대만은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과 대만에서 태어난 본성인으로 크게 나눈다. 1961년 타오위안에서 태어난 그는 외성인 2세이면서 동시에 본성인 2세이기도 하다. 국민당의 지지기반이 외성인, 민진당의 지지기반이 본성인인 점을 감안하면 외성인과 본성인을 부모로 둔 그는 누구보다 출신성분, 인맥이 좋은 셈이다.

 

 

 

 


그의 집안도 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부친은 퇴역한 뒤 처가집이 있는 타오위안에서 현의원을 지냈다. 그의 외삼촌도 타오위안에서 현의원을 지낸 바 있다. 주리룬은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1979년 대만 최고 명문인 대만대학에 진학할 때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법학과나 정치과를 선택하지 않고 상과를 선택했다. 대만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일념으로 경영학을 고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그 곳에서 그는 같은 대학 유학생인 가오완첸과 연애를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자친구 아버지(가오위런)는 대만성 의회 의장, 타이난현 현장을 지낸 정치인이었다. 처제도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집안이었다. 여자친구는 정치인인 아버지에게 질린 탓으로 남자친구가 정계로 진출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편안하게 생활을 즐겼으면 했다.

 

 

 

 

 

주리룬은 30세에 회계학 박사를 따고 귀국해 1992년,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친구들은 모두 많은 월급을 받고 기업으로 들어갔지만 그는 조용한 교수 생활을 선택했다. 4년 뒤 그는 35세로 대만대학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교수로 있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남들에게 시사 관련 의견을 내놓기를 즐겨했다. 당시는 국민당이 장기집권을 하던 시절이어서 국민당의 인기가 별로였다. 주리룬도 국민당에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는 소장파 젊은이들처럼 행동했다. 부친과 장인도 정계 입문을 권유했다. 장인은 교수라는 게 편안하기는 하지만 젊은 나이에 그러는 것도 너무 지겹지 않느냐고 했다. 아내는 하는 수 없이 남편의 정계 입문을 허용했다. 다만 전제조건을 달았다. 정치를 이유로 가정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집에 정치를 들여와서는 안되고, 정치를 이유로 아들이나 아버지나 남편 노릇을 포기해서도 안된다는 약속을 하게 했다.

 

 

 

 


 1998년, 37세의 주리룬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격인 입법위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입법위원이 되면 전공을 살려 대만 경제 환경을 바꾸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외삼촌은 조카가 정계에 입문하면 당연히 민진당 후보로 나설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주리룬은 국민당을 선택했다. 본성인인 그의 장인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사위를 쳐다보았다. 그는 국민당을 선택한 이유로 국민당이 나름 결함이 많지만 그래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며 국민당에 들어가 국민당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술회했다. 대륙에서 건너온 할아버지로부터 국민당에 얽힌 많은 얘기를 전해들었던 인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민당에 들어간 뒤 그는 롄잔 당시 국민당 주석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나이가 젊고 대만대 교수, 미국 박사라는 화려한 이력에다 회계학 전공이라는 장점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롄잔 주석은 초선 입법위원인 그에게 중책인 국민당 예결위 간사를 맡겼다. 그는 입법위원 시절 자신의 장기를 살릴 수 있어 기분은 좋았지만 조용한 학교 분위기와 달리 떠들썩한 정계 활동이 어쩌다가 어색할 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럴 때면 그의 아내는 학교를 포기하고 정계에 입문했을 때의 마음을 잃지 말라고 늘 충고하곤 했다.

 

 

 

 

 

1998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가 열렸다. 국민당은 당시 민진당 천수이볜 타이베이 시장 연임을 막기 위해 법무부장(법무장관) 출신으로 정치대학 교수였던 마잉주(馬英九)를 전격 투입했다. 마잉주 교수는 천수이볜 시장의 연임을 막고 타이베이 시장이 되었지만, 천수이볜 시장은 총통 선거에 출마했다. 결국 2000년 총통 선거에서 천수이볜 민진당 후보가 이기면서 국민당은 대만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야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롄잔 당시 국민당 주석은 내부개혁을 결심했고, 당 개혁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았다. 2001년 지방 선거에서 주리룬 입법위원을 타오위안현 현장 선거에, 외교부장 출신의 후즈창을 타이중시 시장 선거에 각각 내보내 둘다 이겼다. 주리룬은 당시 39세 나이로 타오위안 현장이 되면서 마잉주, 후즈창과 함께 국민당을 이끄는 3대 소장파 정치인으로 꼽혔다.

 

 

 

 


주리룬은 타오위안 현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 시작한 것이 외국인 투자유치였다. 닭이 없으면 달걀은 어디서 나오는가. 투자유치를 하지 않으면 경제가 돌아갈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대만은 경제 구조조정기였다. 그는 첨단 하이테크 산업, 물류산업을 대대적으로 유치했다. 민진당 집권 시기 대만 정부는 장제스 없애기 운동을 적극 추진했다. 장제스 총통과 그의 아들 장징궈 총통 동상 철거 운동을 벌였다. 이에 대해 주리룬은 도리어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대만 각지에서 철거한 200여개 장제스 장징궈 부자 동상을 가져왔다. 마침내 타오위안은 장제스, 장징궈 부자 동상을 한데 모은 테마 파크를 만들 수 있었다. 현장 임기를 4년을 무시하 마치자 그의 절친한 친구가 연임을 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현장 4년 동안 충분히 실력을 보였으니 이제는 중앙에서 경력을 쌓을 때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고 타오위안에서 현장을 계속 맡았다. 다시 4년 동안 그는 타오위안 공항을 중심으로 물류산업을 적극 발전시켰다. 중국과 대만 관계가 좋아질 경우 양안직항이 이뤄질 것이고 결국은 관광과 경제무역이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2008년 3월22일, 총통 선거에서 마잉주 국민당 후보가 이겼다. 국민당이 다시 정권을 탈환한 것이다. 정권 출범 2개월이 지난 뒤 마잉주 총통 겸 국민당 주석은 그를 국민당 부주석으로 영입했다. 2009년 8월6일, 대만에 엄청난 물난리가 터졌다. 대만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마잉주 내각은 국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주리룬은 타오위안 현장을 떠나 부총리격인 행정원 부원장을 맡았다. 그로서는 지방에서 중앙으로 들어와 행정 관리 능력을 선보이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신베이시 시장 선거에 다시 차출됐다. 신베이시는 원래 타이베이 현이었다. 타오위안 현과 맞닿아 있으며, 수도인 타이베이 시와 다리 하나 사이였다. 타이베이 현 인구가 늘면서 대만 정부는 2010년 12월25일, 타이베이현을 신베이(新北)시로 승격시켰다. 새로 출범한 신베이시는 대만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직할시가 된 것이다. 4백만 인구의 대만 최대의 표밭이다. 2010년 11월말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그는 신베이시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이 곳의 승패가 2012년 열리는 총통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이 될 만큼 아주 중요한 선거였다. 민진당 후보는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이었다. 이 선거에서 주리룬 후보가 102만표를 얻어 차이잉원 후보를 물리치고 초대 시장에 당선됐다. 


그는 자신을 천재형이 아니라 노력파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만대학에서 교수로 있을 때 수업이 있거나 없거나 매일 아침 9시 정각이면 연구실에 도착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금도 매일 아침 7시면 사무실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한다. 그는 야구를 즐긴다. 그가 최근에 내놓은 책 서문에는 이런 표현을 하고 있다. 인생은 야구시합과 같다. 아주 걸출한 투수도 어렵고 힘든 훈련을 거쳐야 마운드에 오르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정작 시합이 시작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승부가 아니다. 너가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는가. 멋진 시합을 하고 있는가 이다. 다시 국민당 구원투수로 등판한 주리룬 국민당 주석이 구원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석달 앞으로 다가온 총통 선거에서 또다시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Posted by 홍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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