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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추석이 되면 전통적으로 월병을 먹는다. 보름달처럼 둥근 떡이다. 월병의 역사는 3000년을 자랑하고 있다. 고대 제삿상에 올렸다. 월병이라는 이름은 북송시대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蘇東坡,이름은 소식. 당송 8대가의 한사람)가 붙였다. 그는 유명한 미식가였다. 서주(徐州)와 항주(杭州)에서 최고 행정책임자로 있을 당시 돼지고기 삼겹살을 삶는 요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런 고기를 그의 호를 따 동파육이라고 불렀다.

 

 

 

 

 

 

삼겹살 요리로는 홍소육(紅燒肉, 중국어로는 훙샤오러우라고 함)도 유명하다. 마오쩌둥 주석은 평생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고기를 먹었다. 동파육은 푹 삶은 고기의 향기가 난다면 홍소육은 입안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는다는 점이 다르다.

 

 

 

 

시진핑의 음식하면 만두가 떠오른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12월28일 고기만두집 징펑바오즈푸(京豊包子鋪)에 들러 만두를 먹었다. 이 만두집은 대박이 났다. 시 주석이 직접 찾았던 징펑바오즈푸 웨탄점은 지방에서 온 여행객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 징펑바오즈푸는 개인이 꾸리는 만두가게가 아니라 대형 국영기업이 운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대박에 힘입어 주식시장 상장까지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찐만두, 군만두를 즐겨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물만두를 즐겨 먹는다. 물만두를 처음 만든 사람은 한나라 때 사람인 장중경(張仲景)이다. 한의학(중국에서는 중의학이라고 함)의 독보적인 저술인 <상한잡병론>을 집필한 장중경이 지금 행정구역으로는 후난성에 있는 장사(長沙)의 최고 행정책임자로 있을 때였다. 백성들이 추위에 떨면서 귀에 동상이 걸려 고생하는 것을 보고 연구 끝에 만든 것이 물만두이다. 물만두는 처음에는 약용으로 만든 것이다. 양고기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약재를 속으로 해서 밀가루 피로 싸서 만들었다. 탕 한그릇과 물만두 2개씩을 백성들에게 먹였더니 귀의 동상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고기만두는 삼국시대 촉나라 재상 제갈량(諸葛亮)이 처음 만들었다. 그가 남만(南蠻, 오늘날 중국 윈난성 일대) 정벌에 나섰다가 귀환할 때였다. 노수라는 강에 파도가 치고 바람이 일어 병사를 실은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남만왕 맹획이 강에 살고 있는 신이 노했다면서 49명 사람의 목을 베어 넣어야 신의 노여움을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제갈량은 실제로 사람 목을 벤 게 아니라 밀가루로 사람 모양을 만들고 속에 고기를 채운 뒤 49개를 만들어 강에 던져 제물로 바쳤다. 그러자 파도와 바람이 잦아들었다고 한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은 모두부(발효 때문에 솜털이 나 있는 두부라는 뜻) 요리를 개발했다. 그는 어렸을 때 가난해 부잣집에 품팔이를 하러갔다가 일을 못한다며 쫓겨났다. 그 때 알던 부잣집 머슴들이 어린 주원장이 애처로와 몰래 두부를 빼돌려 넘겨주었다. 한번은 제때 두부를 먹지 않았는 데 두부가 발효가 되면서 솜털이 잔뜩 났다. 그는 버리기 아까와 솜털을 털고 두부전을 만들어 먹었더니 맛이 기가 막혔다. 주원장은 황제가 된 다음에도 황실 주방장에게 모두부 만드는 법을 전해 늘 만들도록 했다.

 

엄청나게 화려한 음식을 상징하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은 청나라 강희제가 처음 만들었다. 만석은 만주족식 연회, 한석은 한족식 연회를 말한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웠지만 숫자가 많은 한족을 다스리기 위해 요즘말로 하면 만주족과 한족의 투톱 시스템으로 운영했다. 연회도 만석과 한석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강희제가 60세 환갑을 맞아 중국 전역에서 65세가 넘은 노인 2800명을 황궁으로 초청해 연회를 베풀면서 만석과 한석을 한꺼번에 차리도록 했다. 그것이 만한전석이다.

만한전석은 하루에 2번, 사흘동안 이어지는 것이 기본이다. 올라오는 음식은 산해진미가 있다. 해산물로는 제비집, 상어지느러미. 해삼, 전복이 있다. 들짐승으로는 곰발바닥, 사슴힘줄이 있다.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도 미식가로 유명했다. 그는 섣달 그믐날 지방에 순시를 갔다가 뒤늦게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도성의 음식점마다 모두 문을 닫았는 데 유독 조그만 식당 한 군데가 열었다. 시장도 했겠지만 음식이 깔끔해 황제 마음에 들었다. 황제는 도일처(都一處)라고 식당 이름을 붙였다. 도성에 문을 연 곳이 이곳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며칠 뒤 황궁에서 사람들이 나와 도일처라고 황제가 직접 쓴 글씨를 금박에 새긴 현판을 선물로 들고와서 전해주었다. 이후 이 식당은 황제의 맛집이라는 소문이 알려지면서 대박이 났다. 지금도 베이징 도심에 있는 이 식당에는 당시 황제가 앉았던 의자가 보관되어 있다.

 <다음 시간에도 중국의 음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Posted by 홍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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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KK 2015.09.24 0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간이 먹는 것 가지고 하는 천박한 짓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정신이 낮으면 먹는 것에 높은 것을 찾고 본질이 낮으면 저급한 것을 자랑해서 본질을 숨기려고 한다.

  2. mmkkkyy 2015.09.24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그래서 당신은 무얼 먹고 사시는지 ㅋㅋㅋㅋㅋ

  3. 뭐긴 2015.09.24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 먹고 살지